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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님

[목포] 옥단이길 따라 산책하기 (북교동)

by 천씨 2021.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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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어느날

겨울이 뒤로 한 발 물러서고 봄은 한 발 다가온 듯

바람에서 차가운 기운은 줄어들고 햇볕은 따수로움이 강해진 어느날

이 조용한 도시에서 걸어보자. 라고 용기를 내보았다. 

 

그리고 걸어보기로 마음먹은 옥단이길.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그냥 목포에 세워진 길 표지판을 보고 

저게 어떻게 이어질까 하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다가 알게 되었다.

 

 꽤나 흥미로운 스토리이다. 옥단이가 물을 길어오는 길이라고 하는데...

 그길에 따라서 걷다보면 역사를 가진 다양한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옥단이길 - 북교동 한옥거리
  이 일대는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인 '쌍교촌'이 있던 곳이다. 개항 이전부터 '남교'와 '북교' 두 개의 다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쌍교촌'이라 불렸다. 그중 북교동 일대는 개항 이후 목포가 일본인 마을과 조선인 마을로 구분되어 발전되는 과정에서 조선인 부유층이 근대한옥을 지어 거주했던 공간이다. 현재 심복주 가옥, 문재철 가옥 등 20세기 근대한옥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남아 있다. 

 

 그냥 발길 다는데로 걷다가 찾은 옥단이길 북교동 한옥거리. 

 살짝 언덕에 위치했어서 걸을떄면 봄볕에 땀방울이 한방울씩 맺힌다.

 그래도 주변의 건물을 둘러보면 시간이 멈춘듯한 기분이 든다.

심복주 가옥
지정별 목포시문화유산 제23호
소재지 목포시 불종대길 15-4
 목포 개항 이후 북교동 일대에는 조선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근대식 한옥거리가 형성되었다. 본 가옥은 그 가운데 현존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1913년 조성한 것이다. "ㄱ" 자형 안채와 아래채가 서로 마주보는 구조이며, 안채는 3개의 방과 대청,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간채는 전면도로에 접하고 있어 전형적인 도시형 구조를 이룬다. 전통한옥의 변천과정과 일제강점기 목포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건축 유적으로서 가치가 있다.

 

 주변 가옥을 둘러 보고, 골목골목을 둘러보다가 어머 여기는 아직 겨울이 남아있구나 싶은 곳을 발견했다. 

 어느 집의 담벼락이고 나무일테지만

 나무가 너무 멋있게 자라있다. 전봇대줄만 아니었으면 저대로 액자에 걸게 크게 인화했을텐데...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여기는 어딘가로 이어진듯한 입구를 발견했다. 

 술집이라고.. 백년술집이라고 하는데

 아아니... 중세시대 술집같은데...

 한국 아니라.... 러시아로 이동할 것 같은데....

 

 

 그 근처에는 비슷한 이름의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영어니까... 한국어로 하면 소규모숙소, 여관?

 그래도 한옥에서 하룻밤 묶을 수 있도록 조성이 되어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동네가 고아하다.

 조용한 흐름이 있다.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생각이 난다.

 내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보내온 나의 옛 집은 이제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지만

 여기에서 어쩌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관광도시 답게 동네 작은 곳도 놓치지 않고 오밀조밀하게 잘꾸며져있다.

 아니 서울이었으면.... 대문앞에 화분들이 온전히 있을 수 있나...?

 이럴때 내가 여기 오길 잘한 것 같다.

 벌써 만개해버린 벚꽃들을 보았다.

 이제 시작인 벚꽃, 역시 한반도에서 남쪽지방인 것이 확실하다.

 벚꽃이 벌써 개화하다니 

"창공은 내 위에 살려는 힘은 내 안에" / '곡선의 생활 1925' 중에서 

 정말 동네 구석구석에서 순간 발견하는 모든것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옥단이길에서 발견한 것중에 최고는 이 곳이 아닐까?

 반딧불 작은도서관.

 아니 나는 이런 도서관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과거에 문학인들이 많았던, 그리고 여전히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인가 보다. 

 

 옥단이가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다가 북교동성당을 발견했다. 

 

 저 하얀 트럭 위에 써있는 '북교동성당' 표지판과

 저 하얀 트럭 뒤에 자리 잡은 이정표는 아래 사진이 따단~

  이렇게 글을 알려주는 표지판에 나의 다음 산책길도 정했다.

 다음에는 '김우진거리'를 가야지. 뮤지컬 사의 찬미를 통해서 알게된 '김우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나홀로 내적 친밀감이 매우 높아졌던지라 이 곳을 보고 오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북교동 성당(김우진 문학의 산실)
 무안감리로 지낸 김성규의 대저택 '성취원'이 있던 곳이다. 김성규는 장성군수로 지낸 후 목포로 왔기 때문에 인근 사람들은 이곳을 '김장성댁'이라 불렀다. 김성규의 큰아들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 근대극을 연구하고 직접 무대에 올린 김우진(1897~1926)이 이곳 성취원 내 양옥건물인 '백수재'에 머물면서 여러 작품을 집필하였다. 이후 성취원 자리는 천주교 교구에 기부되어 1958년 현 북교동 성당이 자리하게 되었다. 

"이광수류의 문학을 매장하라." (조선지광, 1926 발표)
  김우진은 논문을 통해 당대 최고의 문인 이광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조선이 지금 요구 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오, 미문(美文)이 아니오, 재화(才華)가 아니오, 백과사전이 아니다"라면서
  "거칠더라도 생명의 속을 파고드는 생명력, 한 곳 땅을 파면서 통곡하는 부르짖음이 필요하다"고 계몽적 민주주의와 인도주의의 허구성을 실랄하게 꼬집었다.

 

 "오래 보아야 아릅답다. 그대처럼"

 내 집앞에 이런 문구가 써있다면, 어느날 하루가 나에게 주는 부정적인 감정이 절로 사라질 것 같다.

 북교동은 그런 면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들지 않게 끊임없이 소통해주는 것 같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벤치가 너무 정감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니, 맑고 높다. 

봄인데 마치 가을인 것처럼 하늘이 높다. 

눈앞에 있는 유달산은 거짓말처럼 내 눈에 또렷하다.

 

 매일이 즐겁다. 그냥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나를 충만하게 하는 도시,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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